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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언젠가’라는 말을 참 많이 했습니다. 여행도 언젠가 가면 되고, 하고 싶은 일도 형편이 나아지면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께 맛있는 밥을 사드리고 좋은 곳을 보여드리는 일도 시간이 생기면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체력도 형편도 사람도 내가 준비될 때까지 그대로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은 돈보다 떠날 수 있는 체력이 먼저 줄어들어요
저는 지금도 여행을 앞두면 망설입니다. 여행이 싫어서가 아닙니다.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너무 좋고, 돌아온 뒤에는 늘 다녀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을 나서기까지가 어렵습니다.
여행을 결정하면 먼저 돈을 생각합니다.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를 계산하다 보면 이 돈을 꼭 써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듭니다.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니 며칠 자리를 비우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 괜찮을까, 가게 문을 닫고 가도 될까 하는 생각이 여행을 결정할 때마다 따라옵니다.
예전에는 이런저런 사정을 이유로 여행을 많이 미뤘습니다. 지금은 돈이 아까워서,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서, 가게가 바빠서. 그렇게 한 번 미루고 나면 다음 기회가 또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앞으로 돈이 조금 더 생기고 시간이 많아진다고 해도, 그때 내 다리가 지금처럼 걸어줄지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가면 생각보다 많이 걷습니다. 공항에서도 걷고, 낯선 곳을 구경하려면 계단도 오르고 긴 길도 걸어야 합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다리에 힘이 없으면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여행을 떠나는 일은 망설여지지만, 예전처럼 무조건 다음으로 미루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형편에 맞지 않는 여행을 무리해서 갈 필요는 없지만, 갈 수 있는 형편이고 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면 가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여행을 갈 돈이 생기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여행에는 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집을 나설 마음과 걸을 수 있는 다리도 함께 필요하다는 것을요.
나이들수록 근력이 줄어드는 이유와 생활 속 변화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미루는 사이 내 형편은 생각보다 빨리 달라져요
저는 오래전부터 언젠가는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부는 돈이 많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보다 형편이 나아지면, 돈을 넉넉하게 벌게 되면 그때 제대로 해야겠다고 미뤘습니다.
사실 만원이라도 기부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만원을 기부하는 것이 오히려 창피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기부를 하면서 겨우 만원을 어떻게 내나’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적게 할 바에는 나중에 형편이 좋아졌을 때 더 많이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기부도 ‘언젠가’ 해야 할 일로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상했습니다. 큰돈을 낼 수 있는 날만 기다리면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반대로 내가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으로 시작하면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부터는 금액이 적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시작했고, 지금은 여러 곳에 조금씩 기부하고 있습니다.
기부를 시작하고 보니 제가 기다렸던 것은 돈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고 스스로 만들어 놓은 조건이 오히려 저를 미루게 했습니다.
큰돈을 한 번 내는 것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은 금액이라도 오래 이어갈 수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나누는 것도 기부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만원이 작다는 생각도, 창피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행도 기부도 어쩌면 비슷했습니다. 돈이 더 생기면, 시간이 더 나면, 형편이 더 좋아지면 하겠다고 미뤘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때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작게라도 시작하면 시간이 지나며 무언가가 남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라고 말하는 동안에는 시간만 흐르고, 시작하지 않은 일은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각자의 시간이 있어요
제가 ‘언젠가’라는 말을 생각하면 가장 마음에 남는 사람은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늘 시간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맛있는 밥도 사드리고 싶었고, 좋은 곳도 구경시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지금은 바쁘니까, 조금 여유가 생기면, 다음에 시간이 맞으면 가야지 생각했습니다.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마음은 늘 있었습니다. 다만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을 자꾸 뒤로 미뤘습니다. 그러는 사이 두 분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는 맛있는 것을 사드리고 싶어도 사드릴 수 없습니다. 좋은 곳을 보면 모시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돈이 생겨도 안 되고, 시간이 많아져도 안 됩니다.
이 일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시간이 날 때까지, 내가 여유가 생길 때까지 다른 사람의 시간도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배우자도, 친구도, 형제자매도 각자의 시간이 있습니다. 오늘은 함께 걸을 수 있어도 몇 년 뒤에는 건강이 달라질 수 있고, 서로의 형편이 달라져 같은 자리에 함께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너무 오래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거창한 여행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밥 한 끼를 함께 먹는 일, 가까운 곳을 구경하는 일도 그때 하지 않으면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그 사람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저는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마무리하며
예전에는 ‘언젠가’라는 말에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 하지 못해도 다음이 있고, 형편이 나아지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돈이 생겨도 다리가 기다려주지 않을 수 있고, 큰돈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 시작조차 못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준비될 때까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서둘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무리해서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정말 하고 싶은 일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모든 조건이 좋아지는 ‘언젠가’만 기다리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여행은 갈 수 있을 때 가고, 하고 싶은 일은 작게라도 시작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마음만 품고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하루가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노후의 ‘언젠가’는 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아직 할 수 있을 때 붙잡아야 하는 오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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